본문 바로가기
여행

운현궁 왕자 - 서울여행. 흥선대원군의 저택, 서울운현궁.

by breaking-news-alerts 2025. 5. 2.
반응형

운현궁 왕자,운현궁

 

 

서울운현궁 [사적] 이곳은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훈의 집이다. 이 집은 서운관이 있던 머리에서 유래한 지명을 따라 운현궁이라고 불렸다. 흥선대원군은 어린 아들을 대신해 정권을 잡고 여기서 10년간 정치를 했다. 1864년(고종1)에 노악당과 노안당을 세웠고, 1869년(고종6)에는 일로당과 영로당을 세웠다. 1912년에는 양관(서양식 건물)을 지어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노악당은 안나, 이로당은 별당으로 사용되었다. 그 규모나 격식, 평평한 형태로 보면, 사대부집이라기보다는 궁전 내전에 가깝다. *서운관 : 조선시대에 천문, 재상, 경력일, 아키타 등의 일을 맡고 있던 관저 [국가문화유산 안내문]

 

운현궁 앞에는 삼일대가 놓여져 있습니다. 담은 닦은 돌로 한층 더 정연하게 쌓아 올려져 담과 벽을 이루었다. 지방의 사대부가에서 본 느낌과는 다른 위엄이 있어, 집에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다. 막상 솟는 대문을 지나 운형궁 안으로 들어가면 권위와 위엄보다 당당히 기품 있는 모습으로 사람을 맞이하는 한옥의 멋을 느끼는 순간이다. 은현궁은 고종이 태어나 어렸을 때는 보낸 곳이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고종이 임금이 되어 이곳을 떠난 뒤 지어진 건물이다. 노락당, 노안당, 이로당, 용로당이 그렇고 현재 덕성여대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양관도 그렇다. 흥선대원군의 한옥저택과 양관 모두 국가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어 과리, 보존되어 있다.

 

우뚝 솟은 대문 위에는 ‘운현궁’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있다.

 

대문을 들어가면 저쪽에 노안당과 노락당에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수직사는 운현궁 정문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운현궁을 관리하거나 지키는 수하물이 사용한 공간으로 현재는 생활용품과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문은 운현궁의 애교, 노안당에 들어가는 문이다.

 

은현근의 안체인 노락단과 이로당에 갈 수 있는 문이다.

 

흥선대원군의 주요 거소이자 이 집의 애교인 노안당이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 복식개혁, 중앙관제 복구 등 주요 정책을 논의한 바 있다. 정면 6간.측면 3간 규모로 T자형 평면을 하고 있어, 목조 구조나 세부 기법은 궁전에 이은 품격을 보이는 건물로, 노락당과 함께 고종 1년(1864)에 건립했다.

 

노안당의 뒷모습이다. 상실아궁이 있고 그 위에 다락방도 존재한다.

 

노락단은 은현근의 안채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고종 3년(1866)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이 노락당에서 가례를 들었다.

 

대청층의 높이와 방의 높이가 다르다.

 

지붕에 나타나는 부드러운 곡선은 한국민족이 가는 대한민국이다.

 

노락당 뒤에 복도각을 지나 이로당까지 이어지게 했다.

 

이로당은 노악당과 함께 은현구 안채로 사용됐다.

 

유물전시관은 운현궁과 흥선대원군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흥선대원군의 저택이다. 다른 사대 부가와 다른 느낌의 집이다.

 

반응형